저자세에서 벗어나자
기획 리뷰를 마친 후, 별도로 논의할 게 있어서 따로 추가 회의를 잡았다. 회의 마지막에 배포 일정을 조율했는데, 일정을 맞춰서 전부 개발을 완료하기 빠듯해서 몇몇 기능을 제외하고 배포하되 일정을 맞추는 방향으로 논의되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모양새가 저자세로 요청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기간 내에 안 된다는 말만 들으니까 굽신거리듯 하는 태도를 보여버린 것 같아서 아쉬웠다. 서로 합의점을 찾는 과정이니 굳이 기획자가 자신을 낮춰가면서 회의를 진행하지 말아야겠다.
단호하게 교통정리 하는 것도 기획자의 능력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끔 '이것까지 내가 해야 되나'하는 일이 올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화면에 노출시커야 하는 정보가 있는데, 이 정보를 타 팀의 API에서 받아와야 한다. 근데 그 API를 우리가 써도 될지 개발자가 나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이 점은 개발자들끼리 조율하는 것이 훨씬 낫다. 어차피 나는 중간에 껴서 말만 옮길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개발자는 먼저 나한테 물어본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개발팀끼리 논의해달라고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게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이다. 그런데 가끔 나와 처음으로 일해보는 개발자가 나타나면 그런 단호한 조치를 못 할 때가 있다. 초면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내가 수동적인 기획자로 비칠까 봐 혹은 일을 미루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돼서 그래버렸다.
하지만 결국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비용만 들게 하는 것이기에 잘못된 방법이다. 단호하게 교통정리하는 것도 기획자의 능력이다. 한순간만 용기를 내서 '그건 개발팀끼리 논의해보는 게 더 정확할 거 같아요'라고 말하면 되는 일이다. 연차가 쌓이고 나면, 이런 말 하는데에 딱히 용기를 낼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란다..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네가 후반에 종종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귀가 더딘 이유. 모두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위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 미생
이번 달은 미생에서 나온 이 명언이 절실하게 떠올랐다. 다쳐보니까 평범했던 일상에 얼마나 큰 제약이 생기는지 알게 되었다. 두 다리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ㅜㅜ 이번 경험으로 정말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번 크게 다친 건강은 되돌리기도 정말 힘들다. 앞으로 건강관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다치니까 감사할 일도 정말 많이 생겼다. 일단 재택근무를 허락해준 회사에 정말 감사하다. 다쳤지만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빨리 회복해서 출근하고 싶다.
변화하는 관계
지금 하고있는 프로젝트의 기획 리뷰 자리에 예전 팀 사람들이 와서 들었다. 근데 오랜만에 일로 만나니까 별일도 아닌데 뭔가 너무 반갑고 그립고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일이 너무 많고 치이고 있어서 그런가. 막상 예전 그 팀에 있었을 때는 못 느꼈던 반가움을 느끼니까 신기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사람과의 관계들이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예전엔 삐걱거리던 것이 지금은 잘 맞을 수 있는 거고. 뭐든 단정 지어서 생각하지 말고 유연한 태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3월부터 지금까지 퇴사한 동료의 빈자리를 나혼자서 채우고 있었다. 보통 다른 일이라면 분담했겠지만, 데이터 관련된 운영 업무라서 팀 내 데이터(?) 담당자인 나만 감당하게 되었다. 초반엔 너무 힘들고 이것 때문에 퇴사하고 싶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은 해탈해서 할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이 빈 포지션을 채우기 위해 두달 동안 계속 채용 공고를 열어놨고, 종종 면접도 봐왔지만 여러 이유로 계속 안 뽑혔다. 지쳐가는 와중에 관련된 업무는 더욱더 가중되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좀 섭섭한 말을 듣게 돼서 현타가 세게 와버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내 노력을 너무 피력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은연중에 나는 힘들다고 말하는 게 곧 무능력하다고 비춰질까봐 그런 표현을 자제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묵묵히 일을 해내버리니까 마치 내가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내가 퇴사자 업무까지 하고 있어서 너무 힘들고, 빨리 후임자를 뽑아주지 않으면 다른 대체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어필해야만 했다. 그래야 팀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주고, 내 노고를 더 이해해줄 수 있다. 말도 안 하고 다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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