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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임우주 2022. 3. 30. 01:47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썼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만약 그 친구가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면 랑탕 트레킹은 내 혼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 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믿는다. 경험자들의 조언에 매달려 살아가려는 나를 직접 불확실성과 껴안게 하려고. 미지의 영역에 들어설 때 안내자가 아니라 눈앞의 실체와 만나게 하려고. 결국 삶은 답을 알려줄 것이므로.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I like me best when I’m with you.” 두 사람의 관계가 부러운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살아온 과정과 삶의 방식이 달라도 나의 존재 전체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그런 관계가.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관계.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상의 문제들을 영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습관을 멈춰야 한다. 영혼이 순수한 기쁨과 웃음을 잃기 때문이다. 영혼을 일구고 가꾸는 일은 자신 안에 깃든 영원성에 다가가는 일이다. 우리 영혼의 일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또 다른 일부는 영원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을까? 혹시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산이든 강이든 들판이든 자신과 연결되지 않은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이것도 나이다. 저것도 나이다.’라고 세상 끝까지 확인해 나가다 보니 자신이 아닌 것은 단 한 가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머리를 젖히고 별들을 향해 웃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임을 확고하게 긍정함으로써 무엇이 참나인지 안 것이다. 한 사람은 자기답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지워 가며 ‘나다움’의 자화상을 완성해 나가고, 또 한 사람은 새로운 발견들로 밑그림을 채우며 ‘나다움’의 자화상을 그려 나가면서, 두 사람 모두 참자아를 찾아 나가는 여정을 한 것이다.

추구의 여정에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관계가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자리하고 있는가? 자기희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와 성장을 가져다주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와 작별하는 것은 잘못이거나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어딘가에 나에게 정해진 섭리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의 내 삶에 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온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 삶에 나타나고, 때가 되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진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는 내게 길을 가르쳐 준 모든 만남과 부딪침의 결과물이다. 누구도 내가 걷는 길을 무작위로 교차하지 않는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When it flowers, we will see.’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상대방의 불행에 공감하되,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평정심이다. 영혼의 소진 없이 타인을 지혜롭게 돌보려면 연민과 평정심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돌봄은 단순히 타인에 대한 돌봄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돌봄까지 포함한다. 나도 나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불행한 일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것이다. 고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사건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더 커진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른다는 것과 동의어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안다고 믿지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믿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지만, 사실은 나의 판단과 편견을 신뢰하는 것이다